한국동란 이전만 하더라도 마취에 관한 기술과 지식이 정립이 되어 있지 않았으나 1957년부터 마취과가 독립하면서 수술 전 마취과의 임무가 부여되기 시작하였다. 극히 단순한 일 이지만 그 동안 군에서 마취 전담 경험과 해외에서 연마한 지식을 토대로 수술 전 환자 전 처치를 하게 되었다. 술전 환자 방문은 못했으나 환자 혈색소와 가능하면 흉부 X-선 촬영 정도를 확인하고 전투약으로 수면제인 Seconal (secobarbital), atropine, morphine, morphine-scopolamine 또는 Demerol (meperidine, Pethidine)을 사용하였는데 이 때마다 마취과의사의 환자 면담과 전투약 처방에 대한 장면을 경험하지 못한 외과의사의 강한 저항이 있었다. 그 후 진통제 morphine과 demerol 대신 chlorpromazine (Thorazine)을 최신방법이라고 전투약으로도 사용 하였으나 간독성이 심한 약이어서 투여가 중단되었다.
수술당일 환자가 수술실에 도착하면 일대장관이 벌어진다. 금식하기 위해 밥을 먹지 말라고 하면 수술 받을 때 환자가 허기가 진다며 밥을 제외한 다른 음식을 먹고 오는가 하면 전투약이 잘되지 않아 아이들의 경우에는 수술실내에서 일대 숨바꼭질을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동란 이후 새로운 마취교육을 받고 돌아온 의사들은 많았으나 국내 사정은 마취제나 마취기구들이 잘 조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마취하는데 어려움이 컸다.
1950년 후반까지만 해도 재래식 마취유도방법으로 diethyl ether 개방점적법(open drop method)이 고작이었다. 또한 ether는 혈액에 대한 용해도가 커서 마취유도가 느리기 때문에 빠른 마취 유도를 하기 위해 ethyl chloride나 divinyl ether (Vinethene)와 같은 마취 유도가 신속한 약제를 먼저 흡입시킨 다음 ether 개방점적법으로 바꾸는 유도법을 시행했다. 소아에서는 그런대로 잘 유도되었으나 성인인 경우에는 마취유도가 잘 안되고 환자가 흥분하고 요동함으로써 수술 전에 난동이 일어나 마취를 포기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그러나 ethyl chloride나 Vinethene 같은 유도제는 독성이 강해서 사용상에 위험이 있었다.
또한 ether를 위시한 이들 약제들은 처음에는 한국에서는 제조가 되지 않아 비공식 경로로 공급이 되었기 때문에 약품 조달이 원활하지 못했으며 그 후 수입상에 의존했으나 한 때 ether 수입이 중단되어 ether 파동이 있었던 때도 있었다. 또한 소수의 병원에서만 nitrous oxide(N2O)를 사용하였다.
1960년대 전후에 국립의료원은 스칸디나비아로부터 약품이 조달되어 국립의료원 자체 내에서는 스칸디나비아식 마취 방법을 구사했다. 그러나 국내 대다수 병원에서는 마취제 조달의 어려움 때문에 마취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서도 마취행위를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가끔 비공식적으로 구입한 약제를 가지고 1960년 초부터 thiopental(Pentothal) 과 succinylcholine 을 이용한 마취유도와 ether-산소-N2O를 이용한 마취유지를 하게 되었다.
이때 기관내삽관을 하기 위한 후두경은 직선날 (straight blade)이어서 조작 미숙으로 앞니 손상이 많이 일어났으며 기관내관(endotracheal tube)은 직선으로 되어 있으면서 cuff가 없어 삽관 후에는 붕대를 물에 적셔서 후두 부위를 돌아가면서 새지 않게 막는 소동을 벌였으며 그 후 cuff만 따로 제작하여 기관내관 끝에 끼워서 사용하기도 하였으나 가끔 빠지는 경우가 있어 마취도중 수술을 중단하는 일도 있었다.
1950년 후반에는 마취기구의 수입이 없었고 제작도 되지 않을 때였기 때문에 대부분 군 병원에서 쓰던 야전용 마취기로서 Heidbrink제 야전용이었던 ether jar와 CO2 흡착제 용기 (cannister) 그리고 flow meter (산소)가 달린 삼발이 형의 극히 기본요소만 갖추고 있었다. 그 외에 바퀴가 달린 Mckeson 마취기계가 있었고 1960년 중반에 들어오면서 여러 무역회사로부터 각종 기계가 수입되기 시작하였다. 한편 to and fro system을 사용하기도 하였으나 CO2 흡착제의 cannister가 기관내관 가까이 있기 때문에 흡착제 가루가 흡기 때 기관지로 빨려 들어가는 단점 때문에 사용에 불편이 있기도 했다. 그 외 ether 개방점적법에 사용하는 wire mask는 구입할 수가 없어 시장에 가서 된장 거르는 망사로 된 국자를 사서 망사 쪽 만 잘라내어 이용하는 등 마취기구의 소품들은 과 내에서 만들어 사용하였다.
소아마취에 있어서도 ethyl chloride로 마취유도 후 ether 개방점적법으로 마취를 유지하다 가 근이완제 없이 Guedel 씨 ether 마취 심도 측정법의 2 단계 외과적 수준 (Stage Ⅱ, surgical plane Ⅱ) 때 기관내삽관을 시도하여 Stephen 판 (Stephen valve)을 이용한 비재 호흡법 (NRB system)으로 계속 마취를 유지했다. 때때로 영아에서는 Ayre 씨 T tube를 이용 하기도 했다. 그 외 Ruben valve나 Ambu valve를 이용하기도 하였으며 Leigh valve는 그 후 사용되었다.
우리의 마취는 매우 늦게 시작되어 마취유도 중 갑작스런 심정지 또는 간궤사를 일으키는 chloroform을 사용하지 못했던 것은 차라리 다행이라 하겠다.
1960년 이후부터는 흡입마취제로 ether 이외에 몇 가지 마취제가 있었는데, Trilene (trichloroethylene)은 환자가 스스로 흡입할 수 있고 사용이 간편하기 때문에 주로 개인병원 특히 산부인과에서 간단한 수술을 할 때 사용하였으나 심장독성이 있으며 CO2 흡착제와 같이 사용하면 phosgene이라는 신경독소가 생기는 위험이 있어 사용상 주의가 필요했다. 특히 개인병원에서 Trilene으로 마취를 받은 환자가 응급으로 종합병원에 올 때는 CO2 흡착제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성인에서 NRB system으로 마취를 하느라고 곤욕을 치르는 때도 있었다.
1960년 중반 methoxyflurane (Penthrane)이 소개되고 국내에 수입되면서 ether보다 비등점이 높기 때문에 기온이 높은 월남전에서 많이 사용하기도 하였다는데 이것도 한때 국내에서도 사용하였으나 신장독성의 단점이 있었다. 국내에서 Pentothal, N2O와 ether를 제조 판매하게 되었으며 국산마취기(로얄 메디칼)도 이즈음 생산이 시작되었다.
1960년 초반부터 근이완제로 succinylcholine (Anectine), gallamine (Flaxedil)이 공급이 되었으며 이전에는 d-tubocurarine이 비공식적으로 조달이 되었으나 이에 대한 사용 경험이라든가 지식이 없어 사용 기피 현상이 있었으며 대학병원에서 드물게 사용했다. 한편 정맥 마취제 Pentothal을 마취 유도제로 사용하였고 가끔 morphine이나 Demerol을 정주하기도 하였으며 1960년 말기에 ketamine과 Epontol (propanidid)이 등장하여 일대 혁신을 일으키기 도 했다.
부위마취는 주로 척추마취로 procaine과 tetracaine (pontocaine)을 사용하였으며 척추마취 방법은 전신마취에 비해 조작이 간편하기 때문에 한국동란 이전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도 chloroprocaine을 사용하여 마취를 하였으나 척추마취에 대한 약리 작용을 잘 몰라 합병증이 많았다. 그러나 마취과가 신설되고 이에 대한 이론과 경험이 정리되면서 마취전담의사가 시행하면서 그 이환율이 격감한 사실은 마취과 전문의사의 큰 공적이라 하겠다. 그 외 경막 외마취는 미추마취 (caudal anesthesia)로 겨우 비골부위 (peroneal region) 수술에 적용할 정도였다. 한편 1960년 중반에 통증치료 목적으로 위암 말기 통증에 celiac plexus block을 50% alcohol을 이용하여 치료하기도 하였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상과 같이 대한마취과학회의 발전상 중에서 1950년과 1960년대에 있었던 마취과 분야의 각 부분별로 그 변천한 과정을 기술하였으나 범위가 너무 넓기 때문에 추후 좀더 보완해야 할 것으로 믿는다.